2025년 5월, 국제 신용평가기관 무디스는 미국의 국가신용등급을 한 단계 강등했다. 재정적자 확대와 이자 부담 증가를 이유로 미국 경제 펀더멘털에 구조적 문제가 생겼다고 평가한 것. 하지만 이보다 더 깊은 흐름은 미국의 경제 전략 방향에 있다. 바로 ‘전략적 디커플링’을 중심으로 한 글로벌 공급망 재편이다. 이 과정에서 핵심 키워드는 디커플링(decoupling), 리쇼어링(reshoring), 프렌드쇼어링(friend-shoring)이다.

1. 디커플링(Decoupling): 중국과의 ‘전략적 분리’
미국은 최근 들어 중국과의 경제적 연결고리를 줄이기 위한 전략, 즉 '디커플링'을 본격화하고 있다. 디커플링은 단순한 단절이 아니라, 선별적이고 전략적인 분리를 뜻한다. 스콧 베센트 미 재무장관은 이를 '전략적 디커플링(strategic decoupling)'이라 표현했으며, 자동차, 철강, 알루미늄, 의약품, 반도체 등의 핵심 산업을 우선 대상으로 지목했다.
이러한 디커플링의 배경에는 중국의 비시장적 행위에 대한 불신이 자리하고 있다. 미국은 중국이 공정한 경쟁을 방해하고, WTO 체제 안에서도 자국 중심의 산업 정책을 고수한다고 비판해왔다. 이에 따라 미국은 글로벌 공급망에서 중국을 점차 배제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

2. 리쇼어링(Reshoring): 미국 내 공급망 복귀
디커플링의 실질적 실행 수단은 리쇼어링이다. 이는 해외로 나갔던 제조업과 공급망을 미국 본토로 다시 불러들이는 정책을 말한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미국은 고비용 구조와 제조 인프라 약화로 인해 리쇼어링에 제한이 있다.
제조 인프라 회복이 늦어지고, 고용 비용이 높은 미국 내에서 전면적인 리쇼어링은 불가능에 가깝다. 이에 따라 미국은 전략 산업에 한해 부분적인 리쇼어링을 시도하며, 나머지 산업은 우방국 중심의 공급망 재편, 즉 프렌드쇼어링으로 방향을 돌리고 있다.

3. 프렌드쇼어링(Friend-shoring): 한국에 기회가 될 수 있다
프렌드쇼어링은 공급망을 중국이 아닌 미국과 가치관을 공유하는 동맹국들로 이전하는 전략이다. 한국은 미국의 전통적인 안보 동맹국이자, 반도체, 자동차, 배터리 등에서 강력한 제조 기반을 가진 나라로 프렌드쇼어링의 핵심 파트너로 부상하고 있다.
미국은 자국 내에서 모든 공급망을 커버할 수 없기 때문에, 핵심 부품과 기술 생산을 한국, 일본, 대만, 유럽 등지로 분산하는 정책을 추진 중이다. 한국 입장에서는 이러한 구조에서 글로벌 공급망의 허브로서의 위상을 강화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다.
특히 한국의 반도체, 2차전지, 바이오헬스 산업은 미국이 디커플링과 전략적 자립을 추진하는 데 있어 필수적이다. 따라서 한국 기업들은 미국의 정책 방향을 면밀히 분석하고, 전략적 투자 및 생산시설 분산을 통해 미국 시장에서의 입지를 더욱 공고히 할 필요가 있다.

4. 한국의 대응 전략: 선택이 아닌 필수
이처럼 디커플링은 단순히 미중 간 무역 마찰의 연장선이 아니라, 미국의 구조적이고 장기적인 전략 전환이다. 한국은 이에 대응해 다음과 같은 전략적 접근이 필요하다.
- 공급망 다변화: 특정 국가 의존도를 낮추고 미국, 유럽, 아세안 국가들과의 공급망 협력 확대
- 미국 현지 투자 확대: 반도체, 배터리 등 전략 산업에 대한 미국 내 투자 및 생산 확대
- 정책 연계: 한미 경제안보 협력체계 강화를 통해 무역 장벽 완화 및 규제 대응 능력 확보
- 기술 자립도 제고: 핵심 원천 기술의 내재화 및 중국 의존도가 높은 부품/소재의 자립화
결론: 디커플링의 시대, 한국의 전략은?
미국이 주도하는 전략적 디커플링과 글로벌 공급망 재편은 피할 수 없는 세계경제의 흐름이 되고 있다. 한국은 프렌드쇼어링의 중심국가로서 지정학적, 산업적 이점을 극대화할 수 있는 위치에 있다. 단기적 충격보다 중장기적인 구조 전환의 기회로 삼는 전략이 필요하며, ‘디커플링의 수혜국’으로 전환하기 위한 정책적, 산업적 판단과 실행이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하다.